이 글은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를 들으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말로 마음을 전하는 데 서툴러서 글을 좋아해요.
혼자 감정을 정리할 때도 글을 쓰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제 진짜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글을 빌립니다.
좋은 말은 되도록 글로 남기고, 부정적인 말은 되도록 휘발되게 말하려고 해요. 좋은 말은 오래 곁에 두고 몇 번이고 다시 꺼내 보아도 기분이 좋으니까요. 문상훈 님이 유튜브 영상에서 들려준 이야기를 계기로 갖게 된 저만의 철학이자 습관입니다.
이번에 1년 반 정도 다닌 회사를 떠나면서 함께했던 동료분들에게 작은 선물과 편지를 나눠드렸어요. 어떤 선물을 건넬지 고민하는 순간부터 어떤 문장을 적을지 생각하고, 그것을 직접 전하는 순간까지 모든 과정이 즐겁고 행복했어요.
특히 편지를 쓸 때는 한 명 한 명을 머릿속에 오래 떠올렸어요. 정해진 공간 안에 어떤 마음을 담고 어떤 말을 덜어내야 할지 고민하며 썼다가 지우기를 반복했습니다. 아홉 명에게 편지를 쓰는 데 거의 여섯 시간이 걸렸어요. 물론 손이 아프다는 핑계로 중간중간 꽤 오래 쉬기도 했습니다. (습관성 허세 죄송합니다)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건넨 뒤에는 그 사람의 반응이나 답장을 되도록 기다리지 않으려고 해요. 정확히 말하면, 반응을 기대하지 않으려 한다는 편이 맞겠습니다. 물론 제가 준비한 것을 좋아하고 마음에 들어 하면 좋겠어요. 다만 그 반응이 제가 선물을 건넨 이유가 되지는 않았으면 합니다.
선물과 편지라는 결과보다 그것을 준비하기 위해 들인 시간과 마음이 잘 전달되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저 역시 많은 퇴사 선물과 편지를 받았습니다. 제가 받는 일을 어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쁜 마음을 겉으로 표현하는 데 서툴기 때문이에요. 진심으로 기쁜데도 리액션이 자주 고장 납니다. 선물과 편지를 받고 정말 행복했지만, 그 자리에서 제 마음을 충분히 표현하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워요. 증말로!

집에 돌아와서는 편지에 적힌 모든 활자를 천천히 곱씹었습니다. 편지에는 함께 나눈 감정과 추억과 시간이 작은 글씨로 압축되어 있었어요. 제가 아무렇지 않게 건넨 말 하나를 오래 기억하고 있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는 잊고 지냈던 순간을 누군가는 간직해 두었다가 편지에 적어 다시 제게 돌려주었어요.
편지를 읽으며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친 저를 처음 만나기도 했어요. 내가 기억하는 나와 다른 사람이 기억하는 나 사이에는 생각보다 많은 이야기가 살고 있었어요.
그래서 조금 울컥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눈물샘의 나사가 느슨해지는 모양이에요.
그러다 문득 더 이야기해 볼걸, 더 오래 들어봐 줄걸,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 볼걸, 좋아하고 고마웠다는 말을 조금 더 자주 해볼걸. 하는 아쉬움이 밀려왔습니다.
저는 역시 지나고 나서야 알게 되는 사람인가 봅니다. 함께할 때는 당연하다고 생각해서 보이지 않던 마음들이 억울하게도 떠나는 순간에야 보였던거죠. 하지만 이렇게라도 알게 되었으니, 다음에는 조금 덜 늦게 표현하는 사람이 되어보려고 합니다.
올여름은 40도를 넘길 만큼 뜨거웠지만, 저는 동료들에게 따뜻한 여름을 선물받았습니다.
이 글을 빌려 저와 함께했던 모든 분께, 그리고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에 감사했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