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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법 제623조, 626조를 아시나요?
이 글은 한로로의 〈용의자〉를 들으면서 읽으면 좋습니다.
몸속에 있던 나쁜 감정들을 겉으로 많이 배설한 한 주입니다. 최근 살고 있는 집에 누수 문제가 생겼고, 그로 인해 공사가 필요해졌거든요.
제가 집을 소유했다면 돈만 들이면 됐을 거예요. 물론 그 돈이 정말 아까웠겠죠? 하지만 저는 세를 살고 있고, 민법 제623조, 626조에 의하면 임대인은 세입자가 정상적으로 집을 사용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해야 합니다. (덕분에 민법까지 공부하게 됐네요.)
원인이 생각보다 단순하진 않아 가구를 옮겨 바닥을 깨고 온수 배관을 갈아야 하는 작업을 해야 했죠. 하필 에어컨 아래 부분에 문제의 원인이 있었고, 공사를 위해 스탠드 에어컨을 철거해야만 했어요.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었는데요. 집주인이 에어컨 철거·설치 비용은 본인이 줄 수 없다고 하는 겁니다.
"에어컨 비용은 제가 못 드려요."
잠깐 5초 정도 정적이 흐른 뒤 곧바로 격양된 말투로 감정을 토해냈어요. 에어컨이 문제가 생겨서 철거하는 게 아니라 누수 문제 해결 과정의 일부인데 이걸 왜 저희 책임인 건지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화가 났거든요. 다행히 수화기 너머로 통화를 듣고 있던 공사 인부님께서 사건을 정리해주셨습니다.
"이건 임대인분이 지불하셔야 해요. 지금 결정 안 하시면 공사가 내일까지 미뤄져 비용이 더 나갑니다."
울며 겨자 먹기로 에어컨 철거를 진행했고 문제 부분의 땅을 파내고 공사를 끝냈습니다.
감사히 인부님께서 정리해주셔서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공사 과정에서도 불편한 감정들이 속에서 요동쳤습니다. 욕실 슬리퍼를 신고 저희 집을 돌아다니거나 한 분은 신발장을 열어 제 허락도 없이 슬리퍼를 꺼내 신고 돌아다니셨어요. 이건 화도 안나고 어이 없더군요. 물론 좋게 이야기하여 함부로 물건에 손을 대지 말라고 부탁드렸습니다.
그리고 말도 없이 냅다 시멘트 바닥을 깨서 돌가루가 티비와 소파 쪽으로 날렸어요. 깜짝 놀란 마음을 뒤로하고 잠시 중지시킨 뒤 대형 비닐을 꺼내와 주변 가구들을 덮었어요. 이런 작업은 공사 전에 진행되어야 하지 않나.. 아니면 말이라도 했어야 하지 않나 싶었어요. 혹시나 공사로 생긴 2차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질 것처럼 보이진 않았거든요.
어찌저찌 공사는 잘 끝났고, 집 사방에 튀긴 돌가루와 먼지들을 제거하기 위해 (리센느 러브어택 들으며)걸레질을 하며 나쁜 감정들을 모두 내보냈습니다. 이제 끝났다고 생각했거든요.
바닥 공사가 끝났으니 이제 곰팡이로 덮인 장판과 도배를 해야만 했습니다. 여기서 어김없이 집주인이 등장하죠.
"도배는 안 해줘요. 찢어진 데는 그대로 붙이시고, 도배는 시트지 대충 붙이시면 되잖아요."
에어컨 설치를 못해 가뜩이나 집이 더운데 순간 제 귀와 몸은 더 뜨거워졌어요.
참 억울하죠. 이땐 뭔가 체념 같은 게 목까지 차오르는 것 같기도 했어요. 한숨을 크게 내쉰 뒤, 이 통화는 녹음되고 있고 수선해 주지 않으면 법적인 절차를 밟는다는 말을 전했습니다. 여기서 민법 제623조와 626조가 등장해요.
민법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꺼내야만 일단락이 되었습니다. 물론 도배 장판 시공 업체를 고르고 견적을 받아내는 과정에서도 치열한 공방전이 있었지만 나름 매끄럽게 해결되었어요.
에어컨 없는 2주간 매우 찝찝하고 힘들었네요. 불행 중 다행인지 에어컨 설치가 끝나자마자 서울엔 폭염경보가 위-잉 위-잉 울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일주일을 힘겹게 그리고 길게 보냈던 적이 오랜만인 것 같아요.
그런데 어쩌겠습니까. 전 전화위복을 믿어요. 아니, 믿을 수밖에 없어요. 올해는 사건 사고가 많았는데요. 정말 어떤 행운과 행복을 주려고 저에게 이런 시련을 주는 건지 감도 안 오네요. (요즘 말)
여러분은 대체로 평안하고 안온한 하루 보내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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